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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덕환 “화학산업 재편, 정부가 제시하되 기업 판단 존중해 줘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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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담 최원영 기자 | 정리 김한슬 기자

승인 : 2025. 05. 12. 18:11

[인터뷰] 이덕환 서강대 화학·과학커뮤니케이션 교수
고부가 스페셜티 전환 필요성
기술 개발·투자는 '기업의 몫'
석유화학산업 사상 최대 위기
글로벌 공급과잉속 존폐 기로
'화학산업=위험' 인식개선 시급
이덕환 서강대 화학·과학커뮤니케이션 명예교수가 지난 7일 서울 성동구 성수역 인근 문진탄소문화원에서 본지와 인터뷰하고 있다. /박성일 기자 rnopark99@
"스페셜티(고부가가치)로의 전환이라는 방향은 정해져 있습니다. 기술 개발과 투자는 이에 능통한 기업의 몫입니다. 다만 화학연구원 등 총괄하고 끌어가야 할 조직이, 급변하는 정부와 사회의 니즈에 의해 방향을 달리하고 그 역할을 못하게 된 건 걱정입니다."

1970년대부터 반세기 이상 대한민국 경제 성장을 이끌어온 석유화학산업이 사상 최대 위기에 몰렸다. 전 세계적인 공급 과잉으로 국내 공장들은 가동 중단을 넘어 폐업 위기에 몰렸고, 화학산업단지가 자리한 여수는 선제대응지역으로 지정되며 겨우 생명줄을 이어가고 있다. 상황이 최악으로 치닫자 정부는 산업구조 재편을 위해 컨설팅을 실시했고, 상반기 중으로 후속 지원책을 발표할 예정이다.

아시아투데이가 '석유와 화학 그리고 배터리의 길'을 주제로 오는 21일 서울 중구 은행회관 국제회의실에서 진행하는 '제3회 석유 화학 배터리 포럼'을 앞두고 이덕환 서강대 화학·과학커뮤니케이션 명예교수를 만나 석유화학업계에 놓인 현실과 해법을 들었다.

지난 7일 서울 성동구 성수역 인근 문진탄소문화원에서 만난 이덕환 서강대 화학·과학커뮤니케이션 명예교수는 석유화학산업이 스페셜티로 가야 하는 방향성에는 변함이 없다고 말했다. 40여 년간 기초화학을 연구해 온 이 교수는 2011년 가습기 살균제 사고 이후 급격히 나빠진 석유화학산업에 대한 인식을 바로잡고자 고군분투 중이다.

◇대외적 위기 이상의 국민 부정적 인식, 개선돼야

이 교수는 업계 위기의 근본적인 원인으로 크게 두 가지를 들었다. 대외적으론 산업 전반에 익히 알려진 중국 및 중동 지역의 공급과잉이다. 지금껏 국내 대부분의 석유화학 기업들은 NCC(나프타분해설비) 등 범용 제품을 중심으로 성장해 왔다. 반면 화학산업을 잉태했던 유럽을 비롯해 미국, 일본은 범용 제품을 한국, 중국 등으로 넘기고 일찍이 스페셜티로 사업 다각화를 진행했다. 1980년대부터 우리나라 역시 스페셜티 필요성에 대한 목소리가 나왔지만, 현실화하진 못했다.

그 배경에는 또 다른 침체 원인이기도 한 정부와 국민의 왜곡된 인식이 컸다는 게 이 교수 주장이다. 석유화학제품은 국내 수출 품목 1~3위를 기록할 정도로 국민 경제를 책임지지만 대중에겐 낯설다. 어렴풋이 알고 있어도, '화학물질'이라는 용어와 특성상 위험하다는 인식이 강하다.

이 교수는 이러한 부정적인 이미지가 법적으로도 적용돼 있다고 설명했다. 2011년 가습기 살균제 사건 이후 화평법(화학물질 등록 및 평가 등에 관한 법률)과 화관법(화학물질관리법)이 제정됐다. 문제는 안전과 환경에 초점을 맞추면서, 정작 산업에 대한 관심과 활성화는 뒷전이 됐다는 것이다.

◇"화학연구원 구심점 역할 해줘야…스페셜티 품목 설정은 기업몫"

이 교수는 또 최근의 석유화학산업 재편 과정에서 화학연구원이 본연의 역할을 하지 못하는 점을 지적했다. 이 교수는 "화학연구원은 화학산업을 일으키는 원동력이 돼야 한다"면서 "선진국의 기술을 가져와 기업과 공장에 나눠주는 것이 (화학연구원의) 주된 역할이었는데 2000년대 들어 맥이 빠지더니, 지금의 화학연구원은 화학부문을 줄이고 탄소중립을 연구하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화학산업을 구조조정하는 데 필요한 기술 개발은 시작도 못 해 보고 갑자기 정부로부터 환경문제연구원이라는 새로운 역할을 부여받은 것"이라며 "화학 산업을 탈바꿈하기 위한 우리 사회의 구심점이 사라져 버린 셈"이라고 평가했다.

화학산업 재편에서 정부의 역할은 제한적이어야 한다고 봤다. 이 교수는 "범용소재는 품목이 다해봐야 10여 개밖에 되지 않지만, 스페셜티는 굉장히 많다"며 "어느 쪽으로 갈지가 문제"라고 설명했다.

이어 "큰 방향을 설정하는 것은 정부 도움을 필요하겠지만, 구체적인 품목을 설정하고 유지하는 것은 철저히 기업 논리에 따라가며 기업 판단을 적극적으로 존중해줘야 한다"며 "정부는 정치적인 외풍을 막아줘야 하고 국민들의 인식 개선,언론의 잘못된 보도를 걸러줘야 한다"고 제시했다.
최원영 기자
김한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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