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기

[기자의눈] 벌어진 틈

기사듣기 기사듣기중지

공유하기

닫기

  • 카카오톡

  • 페이스북

  • 트위터 엑스

URL 복사

https://m4.asiatoday.co.kr/kn/view.php?key=20250407010003736

글자크기

닫기

김임수 기자

승인 : 2025. 04. 08. 06:00

2025040701000585600034321
우원식 국회의장이 6일 서울 여의도 국회 사랑재에서 개헌 관련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대한민국 헌법이 마지막으로 고쳐진 것은 지금으로부터 38년 전인 1987년이었다. 대통령 직선제를 골자로 한 제9차 개헌 이후 지나온 정권마다 제왕적 대통령제를 바꿔야 한다는 시도가 있어 왔으나 번번이 좌절됐다. 대권을 잡은 쪽에선 동기가 사라졌고, 놓친 쪽은 동력을 잃었다.

그러는 사이 헌법도 나이가 들었다. 어떤 문구는 시대가 변하며 의미가 퇴색했고, 또 어떤 문구는 시대상을 담아 의미가 보다 분명해져야 했으나 가만히 고인 채 아전인수식 해석을 낳았다. 헌법의 벌어진 틈을 비집고 튀어나와선 안 될 어두운 욕망이 잇따라 분출됐다.

2024년 12월 3일 당시 윤석열 대통령은 헌법 77조 '대통령은 전시·사변 또는 이에 준하는 국가비상사태에 있어서 병력으로써 군사상의 필요에 응하거나 공공의 안녕질서를 유지할 필요가 있을 때에는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계엄을 선포할 수 있다'에 따라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그리고 122일 만인 지난 4일 헌법의 이름으로 파면됐다.

역사상 세 번째 현직 대통령 탄핵심판은 극한 대립을 부르며 마침표를 찍게 됐지만 헌법은 여전히 지난 겨울 계엄의 본질이 무엇인지에 대한 답은 내놓지 못하고 있다. 계엄을 정당화하는 쪽은 대한민국은 거대야당의 입법·탄핵 남발이 국가비상사태에 준한다고 말하고, 또 계엄을 내란으로 규정한 쪽은 여전히 종식되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국가비상사태란 무엇인지, 공공질서 유지의 범위는 어디까지인지 헌법과 그 하위법이 명확했더라면 없었을 비극일지도 모른다.

헌법 84조 '대통령은 내란 또는 외환의 죄를 범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재직 중 형사상의 소추를 받지 아니한다'는 규정 역시 도전에 직면해 있다. 형사상의 '소추'는 사전적으로는 검사가 특정 사건에 관해 공소를 제기하는 '기소'를 뜻하지만, 법률적으로 이보다는 확장된 개념으로 받아들여지기도 한다. 이를 어디까지 확장할 수 있는지에 대한 해답은 우리 헌법에 담겨있지 않다.

지금 헌법의 틈을 비집고 형사피고인이 대선에 출마하려는 또 하나의 욕망이 국민 앞에 분출될 듯하다. 우리 헌법학자들이 애당초 이런 상황 자체를 생각해 보지 못했음도 무리는 아니다. 제1야당과 그 대표는 대통령 당선 시 재판은 중지된다는 게 '다수설'이라지만 여러 헌법학자는 헌법 조문을 엄격히 해석해 '진행 중 재판'에까지 확장해서는 안 된다는 반론도 제기한다. 그동안 국회와 헌법학자들이 조문을 닦고 조였다면 발생하지 않았을 일이다.

우원식 국회의장은 6일 조기 대선과 개헌 국민투표를 동시에 진행하자고 포문을 열었다. 정치권의 개헌 논의는 헌법 70조 '대통령의 임기는 5년으로 하며, 중임할 수 없다'에 방점이 찍힌 듯하다. 4년 중임제, 이원집정부제, 내각제 등 원하는 방식도 제각각이다. 결국 대통령 자리를 놓고 옥신각신하는 동안 헌법의 틈은 계속 벌어져 주권자인 국민을 '정치 혐오', '사법 불신'이라는 늪에 빠트리고 있다.
김임수 기자

ⓒ 아시아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제보 후원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