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기

[경찰청 24시] “100개의 바늘 모아 하나의 창으로”

기사듣기 기사듣기중지

공유하기

닫기

  • 카카오톡

  • 페이스북

  • 트위터 엑스

URL 복사

https://m4.asiatoday.co.kr/kn/view.php?key=20240531010016983

글자크기

닫기

정민훈 기자

승인 : 2024. 06. 01. 09:00

금융범죄수사계 중심 '병합수사' 체계 정립
투자리딩방 등 신종 금융범죄 집중수사 대응
올 3월 KICS 운영계와 병합수사 고도화 첫발
경찰청 24시
서울시 서대문구 미근동에는 밝은 회색빛 기둥이 눈에 띠는 두 개의 건물이 있습니다. 경찰 조직의 심장부로 불리는 경찰청과 전국 수사 경찰의 헤드쿼터 역할을 하는 국가수사본부입니다. 24시간 불빛이 꺼지지 않는 곳으로, 수백 명의 경찰관들이 국민 안전을 위한 치안 정책을 비롯해 신종 범죄수법, 국제공조 등 여러 치안 업무를 담당하며 범죄로부터 안전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아시아투데이는 매주 토요일 [경찰청 24시]를 통해 치안 최정점 기관인 경찰청과 국가수사본부에서의 이야기를 독자 여러분께 전합니다.

경찰청
경찰청. /박성일 기자
국가수사본부의 새로운 수사 체계 정립

경찰청 국가수사본부(국수본)가 점차 지능화하는 사기 범죄에 대응하기 위해 새로운 수사 체계를 정립했다. 하나의 사건임에도 전국 경찰관서에 퍼즐처럼 흩어져 있던 사건의 조각을 한 데 모아 범죄 실체를 밝히는 신(新) 수사체계, 바로 '병합수사'를 도입했다.

국수본은 이를 이용해 올해부터 △투자리딩방 사기 △유사수신·불법다단계 △자본시장법 위반 △가상자산특별법 위반 △불법사금융 △연애빙자사기(로맨스스캠) 등 6가지 신종 금융범죄에 대응하고 있으며, 올 1월부터 5월까지 투자리딩사기 등 주요 금융범죄 3063건을 분석해 78건으로 병합하고, 사이버사기 2만3628건을 3829건으로 병합·수사지휘를 했다.

수사 체질이 개선되면서 중복 수사로 업무 부담이 줄고 사건 처리 지연이라는 문제까지 개선되고 있다.
이러한 수사 체계가 정립되기까지는 많은 시행착오가 있었다. 이 중심에는 가장 먼저 '병합수사' 아이디어를 제안한 유지훈 국수본 금융범죄수사계장과 그의 팀원들이 있었다.

"100개의 바늘을 모아 하나의 창으로"
투자리딩방, 유사수신·다단계 투자사기(가상자산 등)과 같은 다중피해사기의 특징은 피해자가 범인의 얼굴을 전혀 모른다는 것이다. 범인들은 일회용품 같은 대포통장, 대포폰 명의자 뒤에 숨어 자금세탁은 물론 총책, 콜센터, 상담기망책, 대포통장·대포폰 공급책 등과 같이 여러 기능의 독립된 조직을 운영하며 경찰의 수사망을 교묘히 빠져나가고 있다.

특히 해외에서 범행이 이뤄질 경우 범인을 특정하고 검거하는 '수사 난이도'가 대폭 올라 수사가 쉽지 않다.

이 같은 사기 범죄의 특성 탓에 피해자가 다수인 사기 범죄는 전국 경찰관서마다 단건으로 수사가 진행되곤 했다. 유지훈 계장은 이러한 단건 수사로는 다중피해사기에 대응하기 어렵다고 판단, 전국에 각기 쪼개져 있는 사건을 한 군데로 집중해 수사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유 계장은 "'바늘로 100번 얕게 찌르지 말고, 바늘을 모아 창으로 만들어 깊숙하게 찔러야 한다'고 생각했다"며 "범행 단서를 기준으로 겹치는 부분을 분석하면 같은 조직이 저지르는 사건을 분류할 수 있을 거라고 판단하고 실행에 옮기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사건병합 전후 수사체계
사건병합 전후 수사체계. /국가수사본부
병합수사의 시작 '엑셀 파일'

유지훈 계장이 '병합수사' 아이디어를 생각해 낸 시점은 지난해 2월이다.

그는 2022년 말 투자리딩방 범죄가 증가하고 있다는 점을 파악, 2023년 2월 전국 수사관서에 엑셀 파일로 범행단서의 취합을 요청했다.

무난하게 범행단서가 취합될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그의 예상과 달리 취합 속도는 좀처럼 나지 않았다. 유 계장은 "당시 정기인사 직후인데다 처음으로 시도하다 보니 취합에 어려움이 있었다"며 "일선에서는 사건 수사도 바쁜데 일일이 엑셀 파일로 입력해야 하니 업무부담도 있었을 것"이라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우여곡절 끝에 엑셀 파일을 취합했지만, 이 과정에서 문제점이 속속 발견됐다. 한 번 보고되면 수정이 어렵고, 취합에 장시간 소요돼 적시성은 물론 비효율적인 단점이 많다는 것이었다.

이후 유 계장은 금융범죄수사계 동료들과 이러한 문제점을 공유했고, 범행단서 입력 기능을 형사사법정보시스템(KICS)에 구현하는 방향으로 개선점을 찾았다.

금융범죄수사계와 KICS 운영계는 이 안건을 놓고 논의를 시작했고 긴 개발 기간을 거쳐 올해 3월 KICS에 범행단서 입력기능을 구현하는데 성공했다. 금융범죄수사계는 곧바로 일선 수사관서에 범행단서를 빠짐없이 KICS에 입력하도록 여러 차례 안내했고, 전국에서 입력되는 범행단서들을 바탕으로 본격적인 분석 작업이 시작됐다.

그 결과, 전국에 흩어져 있던 사건의 실체가 서서히 드러났고 범인 검거라는 성과로 이어지게 됐다.

유 계장은 "지금은 실시간으로 입력되는 범행단서를 활용해 본청 직접 분석, 일선 요청, 언론·민원인 제보 등 다양한 경로를 통해 병합분석이 이뤄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유지훈 경찰청 금융범죄수사계장
유지훈 경찰청 금융범죄수사계장
수사관서별 경쟁…병합수사가 가져온 변화


병합수사가 국수본의 새로운 수사체계로 정립되면서 전국 시도경찰청 직접수사 부서를 비롯해 일선 수사관서에도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


병합수사가 등장하기 전 '업무부담' 등을 이유로 일부 관서에서 집중수사를 꺼리는 경우가 많았고, 경찰청에서 필요성을 설명하고 설득하는 사례가 대다수였다. 그러나 현재는 병합수사로 집중수사를 뒷받침할 수 있는 증거가 많아지면서 전국 시도경찰청 직접수사 부서마다 '사건 담당'을 자처하고 있다.

유지훈 계장은 이러한 변화에 대해 "경찰서 단위에서 하기 어려운 사건을 시도청 수사팀이 맡아서 하므로 경찰서는 사건 부담을 줄이고, 시도청 수사팀은 많은 단서를 가지고 본범을 쫓는 집중수사가 가능하게 됐다"며 "집중수사를 통한 본범 검거 소식이 들려오기 시작했고, 앞으로 훨씬 더 많은 소식이 들려올 것"이라고 힘줘 말했다.

이어 "데이터 분석 및 병합 정확성을 더 높이고, 프로세스 시간을 단축하며, 이러한 점을 머신러닝 등의 자동화 체계로 나아가도록 계속 발전시켜 나갈 예정"이라고 강조했다.

정민훈 기자

ⓒ 아시아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제보 후원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