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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의 5500억달러 ‘갈취’…한국에 적용 ‘교과서’, 미일 무역협정의 내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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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만주 워싱턴 특파원

승인 : 2026. 02. 04. 12:26

2025년 10월, 러트닉 주재 오쿠라호텔 비공개 회의, 불균형 합의의 서막
트럼프-CEO 만찬의 '판토마임'…이미 서명된 문서와 기념사진
'일본 기준선', 한국으로 번진 ‘도망칠 수 없는' 대미 투자 압박
트럼프 일본 경제상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왼쪽)이 2025년 7월 22일(현지시간) 백악관 집무실(오벌 오피스)에서 일본의 관세 협상 총괄인 아카자와 료세이(赤澤亮正) 일본 경제재정·재생상과 악수를 나누고 있다./댄 스커비노 백악관 부비서실장 엑스(X·옛 트위터) 캡처
영국 일간 파이낸셜타임스(FT)는 3일(현지시간) 미국과 일본의 무역협정을 '세계에서 가장 이례적이며 잠재적으로 일방적인 무역 합의'라고 규정했다.

일본은 미국이 일본산 상품에 대한 미국의 관세를 25%에서 15%로 인하하는 대가로 5500억달러의 대(對)미국 투자를 약속했다.

FT는 일본의 모든 투자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는 점을 특히 강조했다.

◇ 일본의 미국 5500억달러 투자 '강압'의 서막...2025년 10월 11일, 러트닉 주재 오쿠라호텔 비공개 회의

이 '일방적' 합의의 시작은 지난해 10월 11일 일본 도쿄(東京)의 오쿠라(大倉)호텔 회의였다.

FT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이 일본 재계 핵심 인사 100명과 만찬을 갖기 사흘 전인 그날 실질적인 협상은 주일 미국대사관 인근 오쿠라호텔 비공개 회의실에서 시작됐다.

하워드 러트닉 미국 상무부 장관은 손정의(孫正義·손 마사요시) 소프트뱅크그룹(SBG) 회장 등 일본 대기업 경영진들과 연쇄 회의를 주재하면서 이후 5500억달러 규모로 불어날 투자 약속을 조율하고 있었다.

FT는 이날의 조율이 전례 없는 속도와 규모로 이뤄졌다며 "일본이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투자 결정의 광풍(frenzy)을 촉발했다"고 규정했다.

미일 무역협상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025년 7월 22일(현지시간) 백악관 집무실(오벌 오피스)에서 일본의 관세 협상 총괄인 아카자와 료세이(赤澤亮正) 일본 경제재정·재생상(오른쪽 네번째)과 대화하고 있다. 이 자리에 미국 마코 루비오 국무부 장관(오른쪽부터)·스콧 베선트 재무부 장관·하워드 러트닉 상무부 장관, 그리고 야마다 시게오(山田重夫) 주미 일본대사 등이 배석하고 있다./댄 스커비노 백악관 부비서실장 엑스(X·옛 트위터) 캡처
◇ 10월 14일 트럼프-일본 CEO들 만찬장의 연출과 혼란… '이미 서명된 문서'와 기념사진의 판토마임

그러나 10월 14일 만찬 현장은 그대로 연출과 혼란이 동시에 존재했다. 파나소닉·히타치(日立)제작소·소프트뱅크 그룹 CEO들은 이미 서명된 문서를 들고 트럼프 대통령 옆에서 사진을 찍었다. 일부 CEO들은 대기 시간 지연(long delay)에 씩씩댔고(fume), 자신이 무엇에 서명했는지조차 혼란스러워했다.

그럼에도 행사는 성공으로 포장돼 전 세계에 공개됐고, 한 참석자는 이를 '한번도 경험하지 못한 완전한 판토마임(tatal pantomime)'이었다고 규정했다.

다른 관계자는 "일본 CEO들은 호텔 회의실에서 몇 시간 만에 거래를 성사시키는 것보다 수개월이 걸리는 협상에 익숙하다"면서도 "하지만 그것(서명 행사)이 양측 모두에 필요한 방편(expedient)이었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FT는 이 에피소드 자체를 트럼프식 외교의 전형인 '쇼로서의 거래(dealmaking as spectacle)'라고 규정했다. 한 일본 기업 최고경영자(CEO)는 이를 '셰이크다운(shakedown·갈취)'이라고 했고, 한 외교관은 '거리 수준의 전술(street-level tactics)'이라고 혹평했다.

트럼프 행정부는 '강압(arm twisting)'을 부인하며 서명 문서는 '탐색적(exploratory) 문서'에 불과하다고 해명했다.

실제 대형 거래(megadeals)가 구체화되는 상황에서 일본은 전후 최단기 해산 총선을 앞두고 있었다. 정치 일정과 얽힐 경우 국회 논의와 여론 반발로 협상이 지연될 가능성이 컸기 때문에, 투자 약속은 구속력 있는 계약이 아닌 '관심 표명(expressions of interest)'이라는 형식으로 처리됐다.

FT는 이 형식 덕분에 일부 CEO들이 이사회 승인을 피할 수 있었고, 일본 정부는 트럼프 대통령의 임기가 종료되는 2029년까지 5500억달러 투자를 이행할 방법에 관한 설명(명분)을 마련할 수 있었다고 전했다.

트럼프 손정의
도널드 트럼프 당시 미국 대통령 당선인(오른쪽)이 2024년 12월 16일(현지시간) 플로리다주 팜비치 마러라고 저택에서 일본 소프트뱅크그룹의 손정의(孫正義·일본명 손 마사요시) 회장과 공동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로이터·연합
◇ 만찬 이후 곧바로 시작된 압박… "합의 이행 보여야 한다"

FT는 만찬 직후 일본이 곧바로 압박 국면에 들어갔다고 전했다. 협상에 관여한 일본 측 고위 인사는 "기다리면 트럼프가 관심을 다른 데로 돌릴 수 있다고 생각한 사람도 있었지만, 너무 위험하다. 합의를 지키고 있다는 것을 보여야 한다"고 말했다.

이후 일본과 미국은 대형 투자 프로젝트를 논의하기 위해 최소 세 차례의 고위급 회의를 열었다. FT는 일본 측에서"첫 번째 거래는 엄청나지 않아도 된다. 빠르게 진전이 있다는 것을 보여줄 만큼이면 된다"는 인식이 공유됐다고 전했다.

관세왕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월 16일(현지시간) 트루스소셜에 올린 백악관 집무실 사진에 '관세 왕'이 적혀 있다./트럼프 대통령 트루스소셜 캡처
◇ 미·일 비대칭적 합의의 실체, 수익 90% 미국 선점...최종 결정권, 트럼프

FT에 따르면 미·일 투자 협정의 법적 기반은 2024년 7월 체결된 양해각서(MOU)다. 제안된 프로젝트는 '전략적 및 법적 고려 사항'에 따라 미·일 협의위원회가 스크리닝하고, 러트닉 장관이 이끄는 투자위원회가 트럼프 대통령에게 올릴 안건을 선별한다. 최종 승인권은 트럼프 대통령에게 있다.

자금은 일본국제협력은행(JBIC)의 신용 제공 또는 일본무역보험(NEXI)의 보증을 통해 특수목적법인(SPV)으로 흘러간다. 프로젝트 수익은 일본 대출 상환 전까지 50:50으로 나뉘지만, 상환 이후에는 미국이 90%를 가지게 된다. 일본이 지연하거나 거부할 경우 추가 부담 또는 관세 인상 위험도 명시됐다.

한미무역협상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왼쪽 다섯번째)과 구윤철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여섯번째)·김정관 산업통상자원부 장관(네번째)·여한구 산업부 통상교섭본부장(세번째) 등 한국 무역협상 대표단이 2025년 7월 30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한 한·미 협상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있는 모습으로 백악관이 7월 31일 엑스(X·옛 트위터)에 올린 사진. 오른쪽이 마코 루비오 국무부 장관, 세번째가 스콧 베선트 재무부 장관, 네번째가 제이미슨 그리어 미국 무역대표부(USTR) 대표, 그리고 왼쪽 두번째가 하워드 러트닉 상무부 장관이다./백악관 엑스 캡처
◇ 일본을 넘어 한국으로...한국 겨냥한 트럼프의 '기준선' 전술

미·일 무역협정의 '룰'은 한국에도 그대로 적용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과 러트닉 장관은 한국을 향해 일본 합의를 '기준선(reference point)'으로 제시하면서 한국의 대미 투자를 압박하면서 이를 조속히 이행하지 않을 경우 현재 15%인 관세를 25%로 인상할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FT는 "일본과 이웃 국가인 한국이 관세 부담을 낮추기로 한 약속의 성격은 (약속 이행) 지연에 대한 트럼프 대통령의 관용 시험대가 됐다"며 "이 문제를 잘못 처리할 경우의 위험은 더 이상 추상적이지 않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달 26일 한국 국회가 한·미 간 무역합의 이행에 필요한 법적 절차를 완료하지 않았다면서 한국산 상품에 대한 관세를 무역합의 이전 수준인 25%로 복원하겠다고 밝힌 사실을 거론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발표와 관련, 로이터·블룸버그통신은 일본이 첫 대미 투자 프로젝트 선정을 비교적 순조롭게 진행 중인 점을 언급하며, 트럼프 행정부가 동맹국 간 이행 속도를 비교하고 있다고 전했다.

FT는 일본이 미국과의 합의를 '도망칠 수 없는 선택(no escape)'으로 받아들였다고 전했다. 그리고 기사의 마지막 문장은 이 거래의 성격을 압축한다. "시계는 돌아가고 있다(The clock is ticking)." 일본이 먼저 겪었고, 한국에 이미 적용되고 있는 트럼프 대통령의 '기준선' 전술인 셈이다.
하만주 워싱턴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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