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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범주와 경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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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 2025. 12. 17. 15:41

/이황석 문화평론가·한림대 미디어스쿨 교수
예수의 MBTI는? 제목부터가 흥미롭다. AI는 4복음서에 기록된 예수의 행적과 언행을 중심으로 INFJ로 분류하고 있었다. 독실한 기독교도들은 예수를 ENFJ로 규정하는 것을 선호하는 듯하다. 영성의 지도자이자 신성을 부여받은 예수가 자신의 내면에 천착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겠다. AI의 객관적인 분석보다는 확실히 인간적인 관점이 반영되었다고 보인다.

한편, 이번 학기 수업 시간 수강생들에게 이창동 감독의 영화 '버닝' 속 등장인물들의 MBTI가 뭐라고 생각하는지 물어보았다. 혹시나 해서 MBTI 16개의 범주를 모르는 학생은 모른다고 쓰라고 안내했다. 결과는 약 100명의 수강생 중, 단 한 명의 학생만이 MBTI에 관해 잘 모른다고 답해 왔다. 청춘들에게 MBTI는 일종의 소양이자 소통의 도구라는 게 분명했다.

지금부터는 다소 뜬금없는 이야기를 해보겠다. 인생은 오디세이아다. 안주해서도 안 되지만 안주할 수도 없는, 잡히지 않는 정체성을 찾아 나서는 율리시스의 고된 여정이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라는 은유로서, '정체성을 추구'한다는 것은 자기 자신이 누구인가를 증명하기 위해 치러야 할 대가가 큰 모험이자 궁극적인 인생의 목표다. 젊은 시절, 언젠가 누군가 필자에게 사주를 믿느냐고 물어보았던 것을 청춘들에게 돌려 묻는다. 사주를 믿습니까?

사주팔자 경우의 수는 518,000개다. 오천만 국민이니 대략 백 명이 같은 사주를 타고 태어난 셈이다. 그럼에도 그 백 명의 사람들이 모두 같은 성격, 동일한 운명 선상에 놓여있진 않았다. 수를 헤아릴 수 없는 많은 사주팔자를 가진 이들이 그들 각자를 관통했기 때문이다. 내가 언제 어디서 누구를 어떻게 왜 만났는가에 따라 내 삶의 가지는 수없이 분파됐을 것이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끊임없이 분류하고 또 분류한다. 한반도에 정착한 호모사피엔스 중 누군가는 죽음을 불사하고 고사리를 먹어보았을 것이고, 그중 현명한 이가 고사리의 어린순은 독이 없어 먹을 수 있는 것으로 분류하고 나서야 비로소 그것으로 춘궁기 굶주림을 극복할 수 있었다. 분류는 인류가 고안한 탁월한 생존 전략이다. 따라서 우리의 DNA엔 기존의 분류체계에 안주하라는 코드가 탑재되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일반적인 인생의 여정은 우리를 한곳에 머물게 두지 않는다. 분리불안증을 극복하고, 어린이집을 거쳐 유치원 등교에 도전했고, 6년간의 지루한 초등학교에서 언제 튀어나올지 모르는 잠재적 폭력을 견뎌냈으며, 실체적 호르몬의 지배를 애써 무시하며 가시화되지 않은 미래의 나와의 조우를 위해,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십 대시기를 갈아댔다. 생각해 보면 각각의 시기는 '같은 나'이지만 '다른 나'로 숨 쉬고 있었다. 초등학교 때까지 찧고 까불던 개구쟁이 녀석이 갑자기 중학교에 가선 진지하기 짝이 없어지거나, 중학교 때 세상 우울했던 아이가 고등학교 땐 친구들과 어울려 밝은 표정으로 가는 뒷모습을 목격하곤 한다.

그런데 정작 성인이 되었음에도 여전히 자립할 수 없는 채, 현재 청춘들은 학업이라고 위장된 취업 준비와 알바 사이에서 버티고 있는 형국이다. 생존의 문턱에서 MBTI가 제공하는 코드에 안주하며, 자기합리화는 물론 타인과의 갈등을 성격 코드가 맞지 않음으로 갈음하여 가볍게 비켜 가는 초식을 구사한다. 말하자면 MBTI는 '자기애로 회귀한 우울의 정서'에 들이댄 거울이다. 그것으로 자신을 비추기도 하고 그것을 통해 타인을 바라보기도 한다.

문제는 우리의 삶이 열두 번도 넘게 바뀐다는 데 있다. 아니, 인생이라는 선형적 궤도 말고도, 현재 비선형적으로 네트워크화된 삶의 수많은 만남 속에서 '나'라는 주체는 저마다 다르게 규정된다. 수업 시간에 무기력해 보이던 학생이 동아리에선 누구보다 열정적일 때가 있다. 학교에선 순둥순둥한 이가 집에선 왈가닥일 수도 있다. 지금 주변을 돌아보면 누구랑 있느냐에 따라 나의 성격유형은 시시각각 바뀌고 있음을 인지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때론 모든 범주화를 깡그리 거부하고 인생에서 가장 빛나고 아름다운 청년기에 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을 감행할 필요가 있겠다. 과감하게 경계에 서보기도 하고, 자기 자신이 모순으로 가득 찬 지극히 평범한 인간임을 인정하며, 경계인으로서 우뚝 서볼 필요가 있다. 그래야만 온전히 내가 선택한 정체성을 나라고 선언할 수 있다. 기왕에 예수 이야기로 글을 시작했으니, 그것으로 글을 갈무리해 볼까 한다.

예수가 죽은 십자가상 머리엔 'INRI'라고 적혀있다. MBTI의 새로운 유형인가 싶겠지만, 그 의미는 '나사렛 예수, 유대인의 왕'이란 라틴어의 머리글자다. 나사렛이란 변방 출신 예수가, 유대라는 변방의 왕을 자처했다는 죄명이다. 그러나 희생 제의에서 부활이라는 상징으로 거듭난 예수야말로 진정한 경계인이다. 신앙심은 없지만, 혁명가이자 경계적 존재로서 그의 행적에 무한한 애정을 느낀다. 이쯤에서 청춘들에게 감히 고하자면, 범주에서 벗어나 경계인을 자처했을 때, 원대한 출발이 가능하다. 곧 있으면 동지이자 크리스마스다. 떠오르는 태양과 함께, 대한민국의 청년들에게 새로운 시작점이 될 수 있는 원년이 되길 소망해 본다.

/이황석 문화평론가·한림대 미디어스쿨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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