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방색으로 그린 자연과 인간의 질서

‘오승윤: 풍수의 색, 생명의 선율’展
회화 30점·판화 7점으로 살펴보는 작업 세계
자연과 생명의 질서를 탐구해온 화가의 여정

국립아시아문화전당 복합전시6관에서 열리고 있는 '오승윤: 풍수의 색, 생명의 선율'은 자연과 인간의 조화를 평생의 주제로 삼아온 오승윤 화백의 작업 세계를 조망하는 회고전이다. 전시는 내년 1월 18일까지 이어지며, 회화 30점과 판화 7점 등 총 37점을 통해 작가가 구축해온 색채 세계와 조형적 탐구를 단계적으로 보여준다. 국립기관에서 열리는 첫 회고전이라는 점에서, 이번 전시는 오승윤의 주요 시기별 대표작을 한자리에서 살펴볼 수 있는 의미 있는 자리다.

오승윤의 회화를 관통하는 핵심 키워드는 '풍수'와 '오방색'이다. 작가는 풍수와 오방색, 민속적 조형미를 지속적으로 탐구해 왔으며, 이를 통해 한국 미술의 색채 미학과 정체성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풀어냈다. 오방색은 그의 화면에서 자연의 기운과 삶의 질서를 드러내는 중요한 시각적 요소로 작동하며, 전시는 이러한 색채 사용이 회화 안에서 어떻게 구현됐는지를 주요 작품을 통해 살펴보도록 구성돼 있다.

(왼쪽) 오승윤, '대한 大寒 Intense Cold'(1973). 얼음낚시를 하는 노인의 모습을 사실적으로 담아낸 초기 구상 회화.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오른쪽) 오승윤, '회상 回想 Remembrance'(1995). 연꽃 위 여인을 중심으로 전통적 상징과 오방색을 결합한 작품.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전시는 두 점의 구상 회화를 시작으로, 작가의 화풍이 구상에서 상징적 구성으로 확장되는 흐름을 따라간다. 1973년작 '대한'은 눈 덮인 빙판 위에서 얼음낚시를 하는 노인의 모습을 사실적으로 담아낸 작품이다. 흰 눈으로 뒤덮인 풍경 속에서 붉은 목도리는 또렷한 대비를 이루고, 푸르게 표현된 그림자는 겨울의 냉기를 전한다. 사실적인 묘사와 함께 색채 감각이 두드러지는 작품으로, 작가의 초기 작업 세계를 보여주는 사례다.

'대한'에서 확인되는 색채의 사용은 단순한 재현을 넘어 감각을 전달하는 역할을 한다. 차가운 계절의 분위기와 고요한 풍경, 노인의 몸짓은 색을 통해 하나의 장면으로 응축된다. 자연은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인간의 삶이 놓이는 공간으로 등장하며, 이러한 시선은 이후 작업으로 이어지는 중요한 출발점으로 기능한다.

1990년대에 들어서며 오승윤의 회화는 상징적 구성으로 확장된다. 1995년작 '회상'은 이러한 변화의 분기점으로 제시되는 작품이다. 연꽃 위에 자리한 여성 인물을 중심으로 물고기와 학, 오리, 거북, 산과 해 등 한국 전통 회화에서 자주 등장하는 상징들이 화면을 채운다. 이 작품은 1996년 몬테카를로 국제현대미술전에서 특별상을 받으며 국제 무대에 소개됐고, 한국적 색채와 상징을 세계에 알린 계기로 평가받아 왔다.

'회상' 속 여성 인물은 다양한 전통적 모티프와 조화를 이루며 화면의 중심을 이룬다. 이 여인은 오랜 시간 한국 문화 속에서 축적돼 온 지혜와 생명력을 상징하며, 작품 전체는 자연과 인간, 현실과 상징이 하나의 화면 안에서 어우러지는 구성을 보여준다. 이 시기를 기점으로 오승윤의 회화는 자연을 바라보는 시선과 상징적 표현이 한층 분명해진다.

오승윤, '풍수 무등산 風水 無等山 Wind and Water at Mt. Mudeung'(1996). 오방색으로 무등산의 자연과 생명의 질서를 표현한 풍수 연작 대표작.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전시에서 주목되는 '풍수' 연작은 이러한 세계관을 더욱 구체화한다. 1996년작 '풍수 무등산'은 오승윤 화백이 일상 속에서 바라보고 호흡해 온 광주의 무등산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표현한 작품이다. 화면에는 새와 사슴, 물고기와 꽃 같은 생명 요소와 함께 하늘과 산, 물과 초가집이 등장하며, 이들은 단순화된 형태와 오방색 속에서 하나의 질서를 이룬다. 자연의 기운과 생명이 조화를 이루는 세계를 통해 무등산의 근원적인 아름다움을 전하고자 한 작업이다.

이 작품에서 무등산은 특정 장소를 넘어 상징적 공간으로 제시된다. 자연은 꾸밈없이 존재하고, 생명과 환경의 요소들은 충돌 없이 하나의 질서를 형성한다. 이러한 화면 구성은 작가가 자연을 바라보며 느낀 감각과 사유를 회화적 언어로 옮긴 결과다.

오승윤, '바람과 물의 역사 The History of Wind and Water'(2004). 자연과 우주의 순환을 오방색으로 풀어낸 대작. 전남도립미술관 소장.

이러한 흐름은 대작 '바람과 물의 역사'에서 더욱 분명해진다. 2004년 광주비엔날레에 출품된 이 작품은 오방색을 활용해 우주의 원리와 만물의 생성 과정을 표현한 대표작이다. 인간과 동식물, 대지와 하늘은 분리된 존재가 아니라 하나의 조화로운 질서 속에 놓이며, 자연의 본질적 아름다움과 생명의 순환이 화면 전반에 드러난다.

이 시기 오승윤은 노트에 '해와 바람, 흙과 물, 나무와 풀, 그리고 우리 자신이 하나가 되는 것이 곧 선'이라고 기록했다. 그의 회화는 이 문장이 담고 있는 사유를 색과 형상으로 풀어낸 결과로 볼 수 있다. 작품 속에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여인은 순수함과 진실, 자연의 본질을 상징하는 존재로 등장하며, 자연과 생명이 이루는 조화로운 질서를 시각적으로 드러낸다.

오승윤, '선녀도 仙女圖 Nymphs'(1999)(왼쪽)와 '물고기 魚 Fish' 연작(오른쪽). 인체와 자연의 모티프를 통해 생명과 조화를 표현한 작업.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선녀도'와 '물고기' 연작에서도 이러한 문제의식은 이어진다. '선녀도'에서 작가는 에로틱한 이미지보다 균형 잡힌 인체가 불러일으키는 기억과 감각의 힘에 주목한다. 인체라는 소재를 통해 인간의 본질에 접근하려는 시도는 오승윤의 작업 전반에 걸쳐 반복적으로 나타난다.

'물고기' 연작과 수련 연작에서는 노랑과 파랑, 초록 등 밝은 색감의 연잎과 순백의 연꽃, 잔잔한 물결이 화면을 채운다. 연잎은 초록에서 노랑, 빨강으로 이어지는 다양한 색으로 표현돼 생동감을 더하고, 빛을 머금은 듯한 연꽃과 함께 리듬감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이러한 색채 대비와 감성은 수련 특유의 맑고 생기 있는 아름다움을 전한다.

1939년 개성에서 태어나 광주를 중심으로 활동한 오승윤 화백은 한국 미술 최초의 인상주의 화가 오지호 화백의 둘째 아들로, 평생을 자연과 인간의 조화를 주제로 작업해 왔다. 그의 대표작인 '풍수' 연작은 오방색을 기반으로 한 독창적 색채 구성과 상징적 화면을 통해 한국 회화의 정신성과 조형미를 세계적 언어로 확장시켰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이번 전시는 오승윤의 작업 세계를 통해 자연과 삶의 질서를 예술로 풀어내려 했던 한 작가의 여정을 되돌아보게 한다. 작품 속에서 인간과 동식물, 대지와 하늘은 하나의 질서 안에서 조화를 이루며 존재한다. '풍수의 색, 생명의 선율'이라는 전시 제목처럼, 이번 전시는 색과 형상을 통해 자연과 생명의 흐름을 차분히 들여다보게 하는 자리다. 관객은 전시장 안에서 작가가 평생 탐구해 온 조화의 감각을 따라가며, 자연과 인간의 관계를 다시 바라보는 시간을 갖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