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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불, 지진, 해일 같은 대형 재난은 엄청난 피해 규모만으로도 고통스럽지만, 재난 이후에 남겨진 사람들에게도 깊은 상처를 남긴다. 살아남은 사람들은 통제할 수 없는 삶의 불행에 절망하고, 재난으로 인한 고통이 영원히 지속될 것 같은 두려움에 괴로워하고, 이웃과 갈등이 잦아지고, 때론 삶의 거처를 떠나기도 한다. 실제로 산불피해 지역의 사람들은 의성, 청송, 영양을 비롯한 경북 북부지역은 인구소멸 속도가 국내에서 가장 빠른데, 산불로 지방소멸이 가속화할 것을 걱정하고 있다.
이번 산불의 피해가 심각하다 보니 정부는 경북 산불지역을 특별재난지역으로 신속히 선포하고 다양한 지원사업과 재건사업을 실행한다고 발표하였다. 아울러 전국에서 산불 피해 성금이 쇄도하여 1486억원의 역대급 성금이 모금되었다고 한다. 모금액으로 산불 피해자들에게 긴급지원금을 우선 지급하고, 심리치유 상담도 진행하고, 마을공동체를 복구하는 데도 사용한다고 한다. 특히 경북도청의 산불 대책 가운데 눈에 띄는 것은 문화 공동체 분야 전문가들의 자문과 연구를 통해 문화예술로 산불지역 마을공동체 재생을 지원하겠다는 것이다. 현재 우리 정부의 재난 복구정책은 생활기반 시설을 지원하는 하드웨어 부분에 있어서는 세계적 수준이다. 늘 소프트웨어적인 부분의 복구가 아쉬웠는데 경북도청이 이제 피해 주민들의 심리치유와 마을공동체의 지속적인 재생 부분에 관심을 가져줘서 아주 고무적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재난의 현장에서 예술을 논하는 것 자체가 말도 안 되는 소리로 치부되고는 했다. 그러나 반복되는 재난 속에서 상처받고 방치된 피해자들을 보면서 예술적인 방법으로 재난을 기억하고 사람들을 치유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우리 사회가 깨달은 것이다. 예술의 주요 기능 중 '치유'와 '기억'이 있다. 그래서 재난의 복구현장에는 포클레인, 불도저 같은 중장비뿐만 아니라 영상감독과 미술가, 글 쓰는 작가가 들어가야 한다. 음악가도 들어가면 좋을 것이다. 필자의 생각으로는 산불 피해지역이 어느 정도 복구되면 마을주민과 복구에 참여한 사람, 마을의 산불을 진화했던 소방대원 그리고 예술가들이 모여 소위 '예술밥상' 같은 것을 차렸으면 한다. 서로 수고했다고 격려하고 지역특산물로 밥상도 차리고 그 자리에서 서로에게 힘을 줄 수 있는 노래도 부르고, 마을의 옛 모습과 복구장면이 담긴 영상도 틀어주고, 마을사람들의 모습을 그림으로 남기면 어떨까 한다.
독일의 철학자 니체가 말했다. "인간이 삶의 비극을 이길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예술이다." 우리의 삶은 불행과 공존하지만, 인간의 위대함은 불행 속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불행한 기억을 삶의 에너지로 승화시키고 극복하는 데 있다. 그래서 예술이 우리 곁에 있는 것이다.
/문화실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