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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스마트 건설기술 시대, 제도 변화의 필요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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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 2025. 05. 02. 07:00

김선주 경기대 부동산자산관리학과 교수
김선주 경기대 부동산자산관리학과 교수
지난달 서울 강동구 명일동에서 지하 터널공사 중 발생한 싱크홀로 인해 인명 피해가 발생했다. 이달 들어선 신안산선 광명 공구 현장에서 균열 및 도로 붕괴 사고가 잇따랐다.

이들 대형 참사의 공통점은 명확하다. 이미 스마트 건설기술로 예방이 가능했던 사고들이었다는 점이다. 지반 침하를 실시간 감지하는 IoT(사물인터넷) 센서, 3D(3차원) 위험 예측이 가능한 BIM(건축정보모델링), 사고 가능성을 사전 경고하는 AI(인공지능) 시스템이 있었다면 충분히 막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고가 반복된 것은 기술의 부재가 아니라, 이를 수용할 제도의 부재 때문으로 본다.

2023년 기준 국내에서 발생하는 건설폐기물 양은 하루당 약 21만톤에 달한다. 건설업 사망자도 작년 기준 연간 276명에 이른다. 건설산업의 안전성과 지속가능성을 근본적으로 개선하기 위해서는 공기 단축·비용 절감·사고 예방 등 세 마리 토끼를 한 번에 잡을 수 있는 스마트건설 기술이 필요하다.

특히 모듈러 건축은 기존 현장 시공 방식 대비 공사 기간을 30~50% 단축시킬 수 있다. 건설 로봇과 자동화 기술은 고위험 작업의 약 40% 이상을 대체할 것으로 예상된다. IoT 센서 기반 스마트 모니터링 시스템은 설비의 온도·습도·진동 지표를 실시간으로 수집한다. 이를 분석한 AI 알고리즘은 사고 예방 효과를 높인다.

이렇다 보니 스마트건설 기술 시장 성장 속도도 가파르다. 보스턴컨설팅, 스마트건설 글로벌 인사이트, 비즈니스 리서치 컴퍼니 등에 따르면 2019년 513조원에서 2030년 5040조원으로 성장할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기술 혁신과 시장 확대에도 불구하고, 현행 제도는 디지털 전환에 발맞추지 못하고 있다.BIM 기반 설계는 일부 공공건축물에 한해 의무화가 시작됐지만, 실제 인허가 과정에서는 여전히 2D(2차원) CAD(Computer Aided Design) 도면 제출이 기본이다. 심의나 인허가 단계에서 BIM 기반 3D 시뮬레이션을 활용한 검토는 극히 드물다. 분쟁 발생 시에도 법적으로 2D 도면 해석이 우선된다.

모듈러 건축은 내화 기준과 인허가 규정의 충돌로 활성화에 제약을 받고 있다. 가령 13층 이상 건축물에는 3시간 내화 성능을 요구하는데, 이를 충족하기 위해 철골 모듈러 구조체에 석고보드를 3~4겹 덧대야 한다. 그 결과 단면이 2.5배 두꺼워져 경제성이 떨어진다. 현행 내화 규정이 모듈러 기술의 특성을 고려하지 않고 있다는 셈이다.

디지털 트윈을 활용한 도시계획 수립 역시 표준화·공간정보 품질 기준·개인정보 보호 문제 등으로 인해 활성화되지 못하고 있다. 정부가 '디지털 트윈 국토' 구축을 목표로 하고 있는 데 반해 주요 도시계획은 아직도 단순한 2D 보고서 중심으로 작성되고 있다.

기술과 제도의 간극을 줄이기 위한 조치가 시급하다. 우선 BIM·디지털 트윈 기반 3D 도면을 인허가 공식 문서로 인정해야 한다. BIM 설계 자료 제출을 의무화하고, 인허가 심의에서도 3D 시뮬레이션을 공식 검토 자료로 활용할 수 있도록 건축법, 국토계획법 등 관렵 법령을 개정해야 한다. BIM 제출 시 2D 도서 생략을 허용하고, 인허가 기간 단축 인센티브를 부여하는 방안도 고려해볼 만 하다.

모듈러 건축 전용 인허가 절차와 용적률·건폐율 인센티브도 필요하다. 예컨대 영국 런던에서는 44층짜리 모듈러 주상복합(101 George Street Tower)이 성공적으로 건설됐고, 미국 뉴욕과 중국에서도 30층 이상 모듈러 건물이 등장했다. 이에 비해 우리나라는 내화 기준 충족을 위한 규제 부담으로 인해 고층 모듈러 건축이 사실상 불가능한 상황이다. 실제 국내 최고층 모듈러주택인 경기 의왕초평 A-4블록 아파트는 22층에 불과하다.

디지털 트윈 데이터 표준화와 품질 인증 체계 역시 구축해야 한다. GML(지리 마크업 언어·Geography Markup Language) 기반 표준을 적극 도입하고, 공간정보 수집 및 활용을 지원하는 법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개인정보 보호와 저작권 문제를 해소하기 위한 별도의 가이드라인도 필요하다.

스마트 건설기술은 더 이상 먼 미래가 아니다. BIM, 디지털 트윈, IoT, AI는 이미 우리의 건설현장에 스며들었고, 시장은 폭발적으로 성장하고 있다. 하지만 제도가 변화하지 않는다면 이 같은 기술들은 실질적 효과를 내지 못할 것이다.

명일동 싱크홀·신안산선 붕괴 사고는 단순한 사고가 아니다. '기술은 있었지만, 제도가 이를 수용하지 못한' 한국 건설산업의 현실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지금 우리는 선택의 기로에 서 있다. 기술을 수용할 제도적 그릇을 새로 만들 것인가, 아니면 또 다른 사고를 반복할 것인가. 스마트 건설기술 시대, 이제는 제도가 답할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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