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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두레·鄕約정신으로 ‘산불 國難’ 극복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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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 2025. 03. 28. 16:43

류석호 칼럼니스트·전 조선일보 영국특파원
“난리도 이런 난리는 평생 처음이다.” “엄청난 불기운에 간신히 몸만 빠져나왔다.” 여드레째 이어지고 있는 영남 산불에 해당 피해 지역 주민들이 거의 이구동성으로 하는 말이다. 건조한 날씨, 강한 바람과 함께 급속 확산한 미증유의 초대형 산불로 경북 안동 의성 청송 영양 영덕, 경남 산청 하동, 울산 울주 등 3개 시도 8개 시군이 거의 초토화되다시피 심각한 피해를 입어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됐다.

화마(火魔)로부터 주택과 문화재, 공장, 농막 축사 등 삶터와 일터를 지키기 위해 소화기, 물 호스 뿐 아니라 양동이 바케스 세숫대야, 심지어 쓰레기통과 냄비에 물을 퍼 와 끼얹는 등 몇 시간에 걸쳐 사투(死鬪)를 벌이는 주민들의 모습은 눈물겹고, 학교가 휴업하고 물 전기 통신 도로가 끊기는 등 그야말로 아수라장을 방불케 하는 참상은 전쟁터나 다름없었다. 천년고찰 의성 고운사 등 귀한 문화재가 순식간에 사라져버리는 안타까운 사례도 속출했다.

영남 지역을 휩쓸고 있는 ‘괴물 산불’이 피해 규모에서 역대 최악의 산불로 치닫고 있다. 지난 1월 400조원에 이르는 천문학적인 피해를 낸 미국 LA 산불보다 더 광범위한 피해를 입힌 것으로 추산됐다. 28일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와 경상북도에 따르면 이번 경북과 경남, 울산 지역 산불로 산림 4만 8150㏊ 규모가 피해 영향에 놓였다. 이는 2000년 동해안 산불 피해를 갑절 뛰어넘는 피해 규모다. 피해 면적의 규모는 축구장(0.714㏊) 약 6만 7400개, 서울 면적(6만 523㏊)의 80%에 달한다. 이에 따라 벚꽃축제 등 각종 지역 축제 및 행사가 취소되거나 축소 연기되는 바람에 지역경제 활성화에도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중국의 굴기와 북·러 밀착, 우크라이나 전쟁, 미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폭탄 등 격랑에 휩싸인 대외여건에다, 수출부진 내수침체 등에 따른 국내경제 상황, 거대야당의 줄탄핵에 따른 리더십 공백 등이 겹치면서 대한민국 호에 비상등이 켜진 상태다.

이번 산불은 이상기후에 대비한 산불 대책을 마련하기 위해 현재의 시스템을 뜯어고쳐야 한다는 등 많은 과제도 남겼다. 헬기 부족과 부품 공급난에다 소형 위주로 산불 진화 한계를 드러내면서, 대형화·동시다발 산불 대비용 중대형 헬기 확충 시급이 시급하다는 것. ‘물대포’와 맞먹는 수준의 살수가 가능한 수송기의 도입, 야간 산불 진화 시스템 도입, 산불 대피 매뉴얼 수립 등이 필요하다는 전문가의 지적이다.


특히 경남·경북에서 발생한 초대형 산불로 피해가 눈덩이처럼 불어나면서 정부의 재정 지원이 절실한 상황이지만 올해 예비비가 절반이나 삭감돼 재난 대응력이 떨어질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갈수록 각종 재해 재난 발생은 증가하고 있지만 정부의 위기용 '실탄'이 크게 줄었기 때문이다. 작년 12월 더불어민주당 주도로 야당이 올해 예산 중 재해·재난에 대응하는 예비비를 절반 삭감한 것이 부메랑으로 되돌아온 셈이다.

여야 정치권은 '산불 추경' 공감대에도 불구하고 예비비 등을 놓고 ‘네탓 공방’ 설전을 벌이느라 조기 집행의 골든타임을 흘려보내고 있어 국민들의 부아를 돋우고 있는 모양새다. 더욱이 거대야당은 이재명 민주당대표의 선거법 위반 사건 2심 재판 무죄 선고에 기세가 올라 한덕수 총리-최상목 경제부총리에 대한 ‘쌍탄핵’ 카드를 꺼내들고 가속페달을 밟고 있다. 문제는 이러한 정치적 상황을 기다려줄 만큼 한국 경제가 한가한 상황이 아니라는 데 있다. 요 며칠 사이 대한민국은 그야말로 전시(戰時)를 방불케 하는 비상시국(非常時局)이다.

춘삼월 호시절을 맞아 잔뜩 희망에 부풀어 있던 국민들은 난데없는 ‘산불 재앙’으로 시름이 깊어지고 있다. 미증유의 팍팍한 살림살이에 실망과 좌절만하고 있을 건가. 그래서는 절대 안 되고 그럴 여유도 없다. 우리에겐 내일이 있고, “이 또한 지나가리라(This, too, shall pass away)”라는 말이 괜히 생겨났겠는가.

무엇보다 우리 민족에게는 어려울 때 서로 돕고 용기를 북돋워주는 베품과 나눔의 미덕(美德)이 있다. 두레와 향약(鄕約)에서 돋보이는 상부상조(相扶相助)와 환난상휼(患難相恤, 어려움을 당하면 서로 돕는다)의 DNA. 3년 전 수도권을 중심으로 기록적인 집중호우로 인한 피해 현장의 복구 활동이 예상보다 빠르게 진행된 데는 전국에서 모인 자원봉사자들의 손길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실제 이번 영남지역 산불에도 온정의 손길이 이어지고 있다. 기업과 금융권, 지자체, 종교계, 대학가, 문화예술계, 일반인에 이르기까지 많은 이들이 성금과 생필품 의류 식품 등 물품, 밥차 지원과 소방대원 및 이재민 휴식처 제공, 일손 돕기 등 자원봉사 활동에 기꺼이 동참하고 있다.

삼성그룹이 30억원, 현대차그룹 20억원, 신세계그룹 5억원, 대우건설 3억원, 현대위아 5000만원, 신한금융그룹 20억원, 하나금융 10억원 등. 서울시가 민간과 산불피해지원 공동TF를 구성, 밥차 및 생필품 지원, 성금 모금에 나섰고, 수원시, 안양시 등 지자체들도 뒤를 이었다. 배우 차은우가 1억원, 정일우가 2000만원, 가수 장민호 이찬원이 각각 1억원의 성금을 쾌척했고 성금이 이어질 전망이다. 

코레일은 피해복구 활동 참여 자원봉사자를 위해 열차운임 전액 감면을 결정했고, 한수원은 이재민 밥차, 소방관 쉼터 제공에 나섰다. 대구대와 상지대는 산불피해 학생에게 특별재난장학금을 지급하고, 영남대 경일대 대구대 상지대는 학생봉사동아리와 교직원봉사단을 재난현장에 파견해 복구활동을 돕거나 모금활동을 펴기로 했다. 한국구세군 원당교회 등 종교계에서도 피해지역에서 밥차 운영 등 배식 봉사에 나섰다. 

우리 민족에게는 예부터 상부상조(相扶相助)의 아름다운 전통이 있었다. 혼자 처리하기 어려운 일은 공동의 노력으로 해결하고 또한 나를 도와준 다른 이들에게도 그렇게 도움을 아끼지 않는 협동(協同)정신의 어울림이 활발했다. 어려운 시기에도 좌절하지 않고 오히려 진심으로 서로를 도움으로써 어려움을 극복했던 선조(先祖)들의 얼은 우리가 지켜가야 할 소중한 유산(遺産)임에 틀림없다. 

두레는 바로 그러한 선조들의 얼을 담고 있는 풍속 가운데 하나이다. 두레의 사전적 의미는 농촌에서 농민들이 농사일이나 길쌈 등을 협력하여 함께 하기 위해 마을 단위로 만든 공동노동조직이다. 

이런 두레의 근본정신은 변함없이 이어지고 있다. IMF시절 국채(國債)를 갚기 위해 온 국민이 동참한 ‘금모으기 운동’이나 2007년 12월 충남 태안 앞바다 초대형 선박 원유(原油)유출 사고 당시 전국에서 수백만 명의 자원봉사자들이 앞 다퉈 나선 해양오염 방지 봉사활동이 그 좋은 본보기다.

이번 영남산불로 인한 막대한 피해와 어수선하고 뒤숭숭한 시회 분위기를 보듬어주고 위기(危機)를 반전(反轉)시켜줄 힘은 한민족 고유의 두레와 향약의 정신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산불 국난(國難)‘에 온 국민이 ’십시일반(十匙一飯)‘의 자세로 지혜와 힘을 모아야 할 때다.

※본란의 칼럼은 본지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류석호 (칼럼니스트, 전 조선일보 영국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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