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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학의 내가 스며든 박물관] 오직 제자리에서 박물을 이루는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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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 2024. 12. 29. 17:52

<6> 일본 모지코 간몬해협 박물관
일본 규슈 모지코의 ‘간몬해협박물관’ 전경
일본 규슈 모지코의 '간몬해협박물관' 전경.
박물관은 동서양을 가릴 것 없이 시민의 문화복지에 절대적으로 기여하므로 세계의 여러 박물관들은 혁신적이고 효과적인 방법으로 자신을 드러내는 일에 한층 애쓰고 있다. 여러 변화의 방식을 해석하고 설명해야 할 필요가 있는 많은 박물관들이 가까운 과거는 낯설게 다루고, 현재는 회피하며, 미래는 무시하는 경향을 보여 온 건 쉽게 부정하기 어렵다. 박물관 혼자서 한 지역의 가치를 오롯이 드러내 보이기가 쉽진 않겠지만, 일본의 한 박물관이 보여주는 잠재적 가치는 부럽기 그지없다.

규슈 모지코(門司港)의 '간몬해협(關門海峽)박물관'. 이곳은 체험형 박물관의 새로운 전형을 보여주는 공간이다. 간몬해협은 일본 혼슈 서쪽 끝 항구인 시모노세키시(下關市)와 기타규슈시 모지구(門司區) 사이의 해협을 말한다. 규슈의 관문이자 혼슈로 가는 길목, 대한해협과 세토나이카이(瀨戶 內海)를 잇는 유일한 해상 교통로이기 때문에 수많은 배들이 오고 간다. 해협을 테마로 과거와 미래가 교차하는 역사의 무대였던 간몬해협의 장대한 이야기를 엮어내는 이 박물관은 모지코 레트로(retro)지구의 랜드마크이다. 원래는 생긴 모습을 따 '해협드라마십(dramaship)'으로 2003년 문을 열었지만, 2018년부터 1년 반 동안
10억엔의 예산을 투입, 리모델링을 하고 체험거리를 늘려, 해협의 역사·자연·문화를 드라마틱하게 체감할 수 있는 시설로 이름을 바꿔 2019년 9월, 재개관했다.

일본 규슈 모지코 ‘간몬해협박물관’ 내 ‘해협 아트리움’
일본 규슈 모지코 '간몬해협박물관' 내 '해협 아트리움'.
5층으로 이루어진 박물관은 요즘의 고층형 박물관들처럼 내려오며 관람하는 구조다. 2층에서 4층까지 뚫린 '해협 아트리움'은 해협의 역사를 환상적이고 역동적인 영상으로 재현해 특별한 볼거리를 제공하는데, 18m×9m의 거대한 돛모양 스크린은 압도적인 영상미로 해협의 다양한 매력을 전한다. 빛과 음악이 어우러지는 바다생물들의 판타지를 사실적인 그래픽으로, 국제무역항으로서 발전한 모지코의 변천을 역동적인 모노로그로, 1185년의 단노우라 전투와 1863년의 바칸 전쟁(馬關戰爭)은 최첨단 애니메이션으로 보여주는데, 나선형 슬로프를 오르는 관람객은 이 영상들을 30분 간격으로 항상 볼 수 있다.

3층의 '해협역사회랑'에서는 혼슈와 규슈가 갈라졌다는 전설에서부터, 시대의 변화를 부른 수많은 사건의 무대가 된 이곳의 이야기를 정교한 인형으로 재현하고 있다. 간몬해협에서 일어난 단노우라 전투, 바칸 전쟁 등도 재현되어 있는데, 어떻게 인형으로 그 장대한 역사의 드라마가 제대로 표현되겠냐고 반문한다면 그건 기우에 불과하다. 일본과 체코 등의 저명한 10여 명의 인형작가들이 화려하고 개성 넘치는 다양한 인형으로 해협의 역사와 풍경을 감동적으로 되살려냈기 때문이다.
일본 규슈 모지코의 ‘간몬해협박물관’ 내 ‘해협 레트로거리
일본 규슈 모지코의 '간몬해협박물관' 내 '해협 레트로거리'.
1층은 1900년대 초반 다이쇼(大正)시대를 재현한 '해협 레트로거리'로 꾸며져 있다. 당시 국제무역으로 번성했던 모지코의 거리 일부를 실제 크기로 재현한 공간이다. 모지코가 바나나를 맨 처음 수입한 곳임을 알려주는 재미난 풍경뿐만 아니라, 전차(電車)가 있고 상인들이 흥정하는 거리의 모습을 사실적인 단색조의 조형물로 보여주고 있다. 이쯤에서 방문객들은 항구도시 모지코로 시간여행을 떠나는 길목에 서 있다는 느낌을 받게 될 것이다. 천장에 달린 수십 개의 조명이 연출하는 푸른 하늘과 노을 그리고 별이 쏟아지는 밤 풍경 속에 거리의 화가, 바나나장수, 영화관, 선술집 등이 지난날의 흥청거림을 느끼게 한다. 자연스레 지역의 역사를 알게 하는 전시기법이 돋보인다. 일본 각지에서 복고풍 경관이나 체험으로 경제효과를 올리게 되면서 유사한 시설들이 세워지고는 있지만, 그것도 실내에 이처럼 잘 만들어진 곳은 흔하지 않을 것 같다. 있다면 오사카의 '생활의 금석관(今昔館)' 정도일 것이다. 4층 '프롬나드 데크'에는 호화 여객선의 갑판을 본뜬 라운지 카페가 있고, 5층에는 간몬해협을 바라보며 식사를 할 수 있는 '마리나 테라스 가이토'가 성업 중이다. 게다가 영화자료관 '영송문고'를 소개하는 등, 다양한 방법으로 간몬해협의 매력을 알려, 한 해 70만 이상의 관광객을 모으는 데 욕심을 잔뜩 낸 공간이지만, 전혀 흠잡을 데가 없다. 오로지 '간몬해협' 그 하나에 집중하고 있는 곳, 다양한 콘텐츠들을 '기-승-전-해협'으로 모아놓은 곳. 사람들은 OSMU(원소스멀티유즈)의 교과서 같은 박물관을 나서면서 모지코 레트로의 가치를 다시 기억하게 되는 것이다.

'무엇이 역사인가'란 물음에 대답하기가 점점 더 어려워지는 시간들이 쌓여간다. 우리는 앞서 살았던 사람들에 대한 존중과 그들의 지혜를 박물관에서 배우지 않는가. 보는 이에 따라 수천 개의 얼굴을 가질 수 있는 곳, 박물관. 나름의 신념을 버리지 않고 과거와 현재를 적절하게 품은 박물(博物)의 공간에 기운을 집중하자. 그야말로 '법고창신(法古創新)'의 문이 열리리라.

김정학 前 대구교육박물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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