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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소 기획시리즈] 역사의 보고 문경지역 산성 탐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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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성훈 기자

승인 : 2021. 07. 19. 10:39

①전쟁의 역사가 서린 ‘문경 고모산성
석현성과 길게 늘어선 성곽 너무 멋지다
자박자박 성곽길따라 낭만산책
저 아래 보이는 진남교반은 경북8경중 제1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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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경시 마성면 신현리 해발 231m 고모산 정상부에 위치한 고모산성이 깔끔하게 정비돼 있다./제공=문경시
최근 경북 문경지역이 비대면 여행지로 부상하고 있다. 코로나19 4차 대유행 공포와 함께 다가온 휴가철을 맞아, 인적 드물고 청정 자연에서 힐링하고자 하는 여행객이 부쩍 늘었기 때문이다.

문경에는 숲, 산, 사찰 등 국제적인 관광지로 떠오를만한 명소가 곳곳에 산재해 있다. 특히 문경새재 1,2,3 관문 등과 함께 고모산성, 고부산성, 정곡산성, 하늘재산성, 희양산성, 성저리산성, 견훤산성, 금품산성 등 많은 산성들이 많이 남아 있다.

이에 아시아투데이는 코로나 시대에 가족·친구·연인들과 안전하고 호젓하게 즐길수 있는, 역사적 가치를 지닌 문경지역 산성을 소개하고자 한다.

①전쟁의 역사가 서린 문경 ‘고모산성’
고모산성은 문경시 마성면 신현리 산 30-3(임)로 해발 231m 고모산 정상부에 위치해 있다.

고모산성은 산지 끝자락에서 좌우로 갈라지는 구릉을 감싼 형태로 총둘레는 1.3㎞로 대형급이며 면적은 13만1200㎡로서 약 4만평 정도의 성곽 내부공간이 존재한다.

축성연대는 대체로 5세기 후반, 삼국시대에 신라가 북진을 하면서 가장 먼저 쌓은 석성으로 본다.

성이라는 것은 수비의 기능이다. 적이 공격해오면 막아야 되는 시설이 바로 성곽인 것이다. 우리나라의 수많은 곳에 성곽이 남아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아무런 곳에 성곽을 설치하지는 않는다. 적어도 성곽을 축조하기 위해서는 많은 인력과 막대한 예산, 그리고 긴 시간을 요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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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모산성 정문격인 석현성(진남문)에 야간 조명을 점등해 색다른 모습을 연출하고 있다./제공=문경시
이렇게 비경제적인 성곽을 한 지역에 시대를 달리하면서 많이 쌓은 까닭은 무엇인가? 바로 문경이 군사적으로 중요한 곳이기 때문이다. 달리 다른 뜻으로 해석할 수 있는 근거가 또 무엇이 있겠는가?

고모산성은 문경지역에 남아 있는 성곽 중 가장 오래전 축조됐고 규모면에서도 가장 큰 산성이다. 1973년 사적으로 지정됐다. 인근 충북 보은군의 삼년산성보다 축조시기에서 무려 1세기가 빠르며 규모면에서도 뒤지지 않는다.

2000년부터 10여 년간 국가정책으로 시행된 유교문화권관광개발사업 발굴, 유적조사에 의해 고모산성이 제대로 세상에 드러나게 됐다.

이전까지는 향토사연구소가 펴낸 고모산성 자료집을 통해 간단하게 알려졌을 뿐 산성의 재원과 역사적 가치에 대해서는 크게 조명된 바가 없었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생활사 등 단군 이래 역사상 가장 큰 변화를 가져왔던 임진왜란 전쟁이 끝나고 벼슬에서 물러난 서애(西厓) 유성룡 선생이 고향 하회에서 임진 7년 전쟁을 징계하고 경계하기 위해 저술한 징비록(懲毖錄, 국보132호)에는 다음과 같은 기록이 전한다.

“…아아 원통하다, 뒤에 들었지만 왜적이 상주에 들어왔으니 그래도 험한 곳을 지나갈 것을 두려워하였다. 문경현의 남쪽 10리쯤 되는 곳에 옛 성인 고모성(姑母城)이 있는데 여기는 좌우도(左右道)의 경계가 되는 곳으로서 양쪽 산골짝이 묶어 놓은 듯하고 가운데 큰 냇물이 흐르고 길이 그 아래로 나 있다. 적병들은 여기 우리 군사가 지키고 있을까 두려워하여 사람을 시켜 두 세번 살펴보게 하니 지키는 군사가 없다는 것을 알고는 곧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면서 지나갔다고 한다. 그 뒤에 명나라 장수 도독(都督) 이여송(李如松)이 왜적을 추격하여 조령을 지나면서 탄식하기를 ‘이와 같이 험한 요새지가 있는데도 지킬 줄 몰랐으니 신총병(申摠兵)은 실로 모책이 없는 사람이었다고 하겠다”

이 기록에서도 알 수 있듯 당시에도 고모산성이 전략적으로 중요한 요충지였음을 알 수 있다.

또 문경현지 관애조에도 ‘영조 임술(1742)에 조령진(鳥嶺鎭)을 설치하고부터 고모산성에도 군졸을 주둔시키고 매년 보수를 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서애 유성룡 선생은 이미 젊은 시절부터 토끼비리와 고모산성 앞으로 지나 한양으로 갈 때 봉생정에서 쉬어가곤 했기 때문에 이 곳의 지형과 중요성을 누구보다도 잘 알 고 있었기에 더더욱 안타까운 심정이 들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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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론으로 촬영한 고모산성 전경./제공=문경시
고모산성은 신라가 5세기경 문경에 진출한 이후 축조된 거점 성곽으로 한강유역 진출과 고구려의 남진방어를 위해 소백산맥 이남에 설치한 전진기지 역할을 했던 것으로 보인다.

아울러 조선시대 임진왜란과 근대 항일의병의 격전지였고, 한국전쟁 때에도 치열한 격전이 벌어졌던 역사적인 관방유적인 동시에 호국의 성지라 할 수 있다.

즉 삼국시대부터 근대까지 우리나라에서 주요한 관방유적으로 자리매김해 온 곳이 바로 고모산성이다.

문경시 관계자는 “문경지역 관광지는 개발이 더디고 인위적인 시설이 부족했으나 그만큼 오염이 덜되고 청정함을 유지할 수 있었다”며 “코로나 시대에 안전한 관광지로 입소문이 퍼지고 있다”고 말했다.

◇길게 늘어선 성곽과 탁트인 풍경이 시원하다

고모산성 주차장에서 오미자테마터널을 거쳐 오른쪽 길을 조금만 걸어가면 고모산성에 금방 도달한다.

10분정도 쉬엄쉬엄 오르면 고모산성 정문격인 석현성(진남문)이다.

올라가는 길은 소나무가 울창하고 잘 정비돼 있다.

어린이도 쉽게 오를 수 있어 가족나들이 코스로 많이 찾는다.

고모산성 성곽은 육중하고 웅장함이 느껴진다.

산성 내부엔 주막거리와 성황당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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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모산성 진남문 앞에 설치된 포토존./제공=문경시
성곽을 따라 산성 위로 오르면 탁 트인 풍경이 펼쳐진다. 영강이 휘돌아 나가는 진남교반을 한 눈에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진남교반은 경북8경 중 제1경으로 꼽힌다. 오랜 시간 등산을 하지 않아도 마치 높은 산 위에서 보는 듯 아름다운 풍경을 감상할 수 있는 매력적인 장소다.

코로나로 인해 관광객이 붐비는 관광지보다는 한적하고 조용한 곳이 다시금 주목 받는 지금 아름다운 자연풍경은 덤으로 비대면 관광을 추구하는 현대인들에게 추천할 만한 곳이다.

최근에는 진남휴게소에서 진남문에 이르는 길과 휴게소 옆 인도교에 야간조명과 포토존을 설치해 밤이면 색다른 모습을 사진에 담아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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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모산성 입구에 야관조명을 밝혀 환상적인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다. /제공=문경시
장성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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